2021년은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던 해였다. 특히 세상과 조금은 떨어져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많은 생각들 중에서도 이번에는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을 희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같다. 행복을 정의내리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역시 정해진 틀이 없기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정립하기 위해 고민해왔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의 이론을 살펴보면서 내 행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결론은, 행복은 내면에 있다는 거다. 행복의 정의를 살펴보면 ‘욕구충족’과 관련이 있다. 결국 ‘욕구’와 ‘충족’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욕구’를 설정하고 이를 ‘충족’시켜내면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구조다. 이때 욕구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조절할 수 있고, 충족은 보다 실제적인 측면에서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노력과 능력이 필요한 ‘충족’보다는 조절할 수 있는 ‘욕구’에 집중하는 것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이 결국 ‘행복은 내면에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보단 적당히 포기하고 기대를 낮추고 사는 편이 역설적으로 더 행복하다.” 다시 말하면, 충족을 위해 안간힘쓰기보다 욕구를 조절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포기라는 단어가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외부세계에 대한 집착’에 있어서의 포기다. 인간은 사회 즉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끝없는 욕망과 경쟁, 그 속에서 우리는 지치고 행복을 잃는다. 그러나 이를 포기할 수 있다면? 비로소 안정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해탈이란 ‘몸과 마음의 고뇌와 번뇌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현실은 모든 것이 고통스럽고 덧없으며 실체도 없다. 고통에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오직 우리 내면에서 고통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나를 구속하는 속세에서 벗어나 나의 내면이 곧 무한한 우주임을 느끼는, 그것이 해탈이다. 나 자신이 우주인데, 굳이 외부세계에서 행복을 찾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우리 인생에는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조차 버거워 ‘간신히 버텨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날도 있다. 나는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내면에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인드로 시작해보자. 적당히 낮춘 목표, 적당히 억제한 욕구로 자존감이 낮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적당한 성취감을 주고 나의 능력치가 높아져 점점 더 큰 목표와 욕구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그리고 욕구라는 것은 아무리 억제해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단단한 내면을 만들었다면 거친 세상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를 헤쳐 나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진 않을 것이다.
“Inner Peace” 2022년에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내면의 평화를 찾고 끝내 행복해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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