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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공대생이 바라본 세상

동물실험은 정당한가 - 생명의 욕구로 해석한 '권리'

by 흔한 공대생 202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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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오래 전 한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물실험에 관한 글을 읽고 동물실험이 정당한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던 기억이다. 그 당시 나는 극도의 친환경주의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논리가 충분하진 못했다. 지금 돌아보니 내 발언의 내용이 부끄러울 뿐이다..

 

  ‘동물실험은 정당한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그 당시의 대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친구: “단순히 동물이 학대당한다는 사실만으로 동물실험이 정당하지 못하다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권리가 우선되어야 한다.”
본인: “만약 인간과 동물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동물이 행하는 ‘인간실험’은 정당한가? 이를 확장시킨다면 서로 다름을 이유로 자신의 집단만을 우선시하는 파시즘이나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친구: “그 말은 한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사회에 대해서는 옳은 전제라 생각하나, 그것이 동물집단에까지 적용되어야하는지는 의문이다.”
본인: “두 집단의 충돌이 있다면 당연히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판단하겠지만, 동물실험이 과연 집단이 충돌할 문제인지 아니면 한 집단의 이기적인 욕구인지 생각해봐야한다. 더하여 ‘존엄성’이라는 특성이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야기는 어쩌다보니 이렇게 끝났었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문득 그 친구가 언급하여 다시 기억났다. 이를 언급하면서 그 친구는 “나는 결국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 비해 특별할 것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라고 말했다. 그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한 그 친구는 정말 많은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재밌는 점은 나도 반대 입장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내린 나의 결론은 ‘동물실험은 정당하다.’다.


 

동물의 존엄성? 생명체의 욕구!

  친구는 결국 존엄성 문제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지에 대해 ‘인간은 특별할 것 없다.’는 결론을 통해 존엄성이 인간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저 결론에는 동의하는 바다. 인간은 그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일뿐,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적용받을 권리가 생긴다. 생명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자연이 원활하게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필요한 단 하나의 법칙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종을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존엄성의 문제가 아니며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동물실험으로 인해 학대받으며 죽어가는 동물들에게 아무 감정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 감정은 그저 연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삶이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가는 과정이다. 즉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한 생명체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1차적으로는 생명을 지속할 욕구, 즉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써 다른 생명체를 먹는 등의 방식으로 이용할 것이다. 이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 다음 단계의 욕구로 넘어간다. 자기만족을 위해 사냥을 하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제적 수단으로 가축을 기르는 등의 방식이다. (과학에 관한) 성취 욕구나 미적 욕구를 위해 행하는 동물실험 역시 이에 포함된다. 따라서 가축을 길러 고기를 먹는 것과 동물실험을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천연기념물을 지정하고 동식물을 아끼며 자연을 사랑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최상위 포식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다른 종을 통제할 힘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우리가 그저 너그러운 것일 뿐이다. 우리가 그들을 보호하는 건 그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을 이루기 때문이다. 만약 무분별하게 생명을 파괴해서 먹이사슬이 꼬이고 자연에 변화가 생긴다면? 우리는 최상위 포식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수도 있다. 심하다면 삶 자체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문제없이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종을 ‘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다른 종이 없어도 우리가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살 수 있는 인공 환경이 조성된다면, 그때는 과연 다른 종을 배려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반려동물이나 관상용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느낀 몇몇의 선택받은 종들만 살아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의 경우

  여기서 생각해봐야할 점은 인간끼리의 분쟁도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위로 봐야하냐는 문제다. 위에서 약육강식의 논리를 통해 다른 종에 대한 지배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인간 사이에서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가? 이에 대한 내용은 인류가 그동안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같은 종이다. 개체 단위로 본다면 힘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종 단위로 보았을 때 동등한 위치에 있다. 만약 인간 사회가 없이 자연에 내던져진다면 어떻게 될까?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그의 책 「리바이어던」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극도로 불안정하다. 생명을 지속할 1차적 욕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따라서 스스로 사회계약을 맺고 집단에 들어가 평화를 찾고자 한다. 무제한이던 자신의 권리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남은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연민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즉 인권과 존엄성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어보았는가? 만약 집단이 나를 부정한다면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물론 소설 속 배경은 이미 집단의 횡포가 이루어지는 시점이다. 한 번 벌어진 일은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집단이 개인을 억압할 수 있는 세상, 세상이 그렇게 되기 전에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한다. 억압받는 개인이 있다면 배려해주어 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언젠가는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기에.

 

마르틴 니묄러(1892~1984) 목사,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독일에서)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 . 그들이 내게 왔을 때 . . .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 인간과 인간의 관계의 차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영위하고, 후손을 남기는 것.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집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은 다르다. 인간과는 삶의 목표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은 별개의 집단으로써 어찌 보면 경쟁관계다. 서로를 위할 필요가 없다. 만약 서로를 위한다고 해도 잘 생각해보면 각자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일 것이다. (예를 들면 반려동물이 제공하는 정서적 안정과 주인이 제공하는 의식주 (혹은 정서적 안정))


 

결론

  어쩌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하지만 정리하자면 간단하다. 친구의 말대로 인간은 특별할 것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익만을 생각해도 된다. 동물을 배려하는 것은 우리 삶의 터전인 생태계를 지키고자 하는 행위일 뿐, 동물의 권리를 생각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나 자신을 지키고 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내 이익을 위한 선제적 조치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금은 정 없고 쓸쓸하지만, 모든 것은 이익의 논리로써 움직인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번외)

  위 글의 내용과는 상반되게, 일반적으로는 베풂을 선으로 생각한다. 베푼다는 것은 그럴 능력이 있다는 뜻이고,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을 동경하는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그 사람에게 호감을 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추가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결국 자신에게는 이익이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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