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 주관주의*
- 본 글은 본인이 직접 읽고 느낀 점을 다루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나 본인의 아주 주관적인 견해를 포함할 수 있음.
개인적으로 일본의 소설을 좋아한다. 일본의 소설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어떤 점을 꼭 하나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이며, 이분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작품이 노르웨이의 숲이다.
지금은 원제목 그대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지만, 옛날에 한국에 들어올 때의 번역된 제목은 ‘상실의 시대’였다고 한다. 그 제목대로 이 책은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상실했지만 상실한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1960년대, 나라는 고속으로 성장하는 한편 개인들에게는 상실감과 우울함이 만연했던 일본의 모습을 다룬 내용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다름없이 이어지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추천하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요양원에서의 삶을 다루는 부분이다. 책 속의 내용에 따르면, 바깥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종의 치료를 받기 위해 머무르는 곳이다. 그 목적에 맞게 찾아가는 길도 어렵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면 별다른 특이한 점은 찾을 수 없다. 산 중턱에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살며 바깥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하고 먹고 자며 살아간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항상 규칙적으로 살아가며 서로 간에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요양원 안에서만큼은 경쟁 없이 협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똑같이 일하고 서로를 상담해주며 함께하는 삶을 산다. 요양원에서 만난 한 사람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무서워 몇 년이나 요양원에서 머무르는 중이라고 밝힌다. 나라도 분명히 그럴 것 같다. 서로를 위해주는 이타적인 삶에서,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기적인 삶으로 가야 한다면 두려울 수밖에, 싫을 수밖에 없을 것 가다. 요양원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입고 먹을 정도만 생산하고 나누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어른들께서 “옛날이 좋았지.”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전체적으로 한 소년과 소녀의 경험과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인위적이지 않고 실제로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는 그런 정도이기 때문에 보다 더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용 자체는 우울한 것일 수 있지만 한 인물의 방황과 고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가가 더 멋지게 보였다. 나도 무언가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상실했다는 사실 자체를 상실해버린 것은 아닐까? 살아가면서 문득 공허할 때면 이 책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질 것 같다. 때로는 충고나 조언보다 나와 비슷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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