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 주관주의*
- 본 글은 본인이 직접 읽고 느낀 점을 다루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나 본인의 아주 주관적인 견해를 포함할 수 있음.
데미안. 짧고도 심오한 고전을 읽었다. 한 소년이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자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아낸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옛날 사람이 쓴 에세이라는 느낌도 들 정도로, 굉장히 사실인 것처럼 묘사해놓은 것이 특징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종교에 관한 자기성찰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 회고록처럼 시작했으며 주인공 자체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음을 강하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진행에서도 이 같은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기존의 생각을 깨고 한 걸음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폭제가 종교 수업이었으며,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인물들과 사건들도 종교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악, 소년 시절의 다른 학교 친구를 ‘데미안’의 도움으로 이겨낸다. 데미안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떠한 태도로 대처해야하는 지 등을 이야기해주고 주인공의 내면을 보다 안정시켜주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직접 나서서 해결했음을 암시하는 말들을 통해 악을 물리친 사람이 되었다. 이어가면서도 주인공이 문제에 부딪히고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깨달음을 주거나, 혹은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경건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종교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주인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라는 개념이 의미 없는 것으로 느낀다. 게다가 그가 생각하는 신은 악을 물리치고 선한 세상을 유지하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었다. 신은 세상의 양면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관찰자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의 종교적 관념과 책의 서술이 일치함을 느꼈다.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관찰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 세상에 개입할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해석을 통해 믿음이라는 행위에 근거를 가지고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종교에 관한 나의 짧은 생각일 뿐, 주인공이 느낀 바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이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도 동일한 맥락으로 보인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공동 이상’을 실현하려는 무의미한 집단활동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더하여 진정 산다는 것은, 나의 자아를 찾아 내면의 여행을 하는, 결국 나에게로 도달하는 것이라 제시한다. 남들이 그러려니 하고 믿는 보편을 깨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시하며, 내 꿈과 자아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때론 조력자의 도움을 통해 흔들리지 않고 ‘나’라는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나아간 결과,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이상향을 내면화할 수 있었다.
있어 보이는 문체에 호흡이 길고 내용이 심오하여 쉽게 그 뜻을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고, 한 번 더 읽는다고 하더라도 저자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신뢰가 쌓이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시작은 사소한 법. 이해하지 못한 절대적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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