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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공대생이 바라본 세상

생명 연장의 필요성에 관하여

by 흔한 공대생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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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로미어(telomere)를 연장할 수 있을까?”

 학창시절, 과학토론 동아리에서 다루었던 주제다. 본론에 앞서 위 주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텔로미어란 염색체의 말단을 보호해주는 골무같은 존재다.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 역시 분열하며, 이때 손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염색체에 직접적인 손상이 가해진다면 분열된 세포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텔로미어라는 구조물을 대신 소모시켜 염색체를 보호하는 구조다.

 즉, 텔로미어는 세포의 수명을 결정하는 소모품이다.

 따라서 텔로미어를 연장할 수 있는 기술이란, 세포의 자연사를 막아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술이다.

 

 

 

 토론의 흐름은 대충 어떠한 식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주제 자체를 다시 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할 수 있든말든, 우선은 그 기술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와 기술개발의 필요성에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생명 연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의 나는 생명 연장에 회의적이었다.

 생명을 연장하는 의미가 있을까?

 나는 ‘죽음’이라는 현상을 억지로 밀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철학적으로, 우리의 삶 자체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 살아간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삶이 끝나는, 삶이 완성되는 순간은 죽음이 완성되는 순간과 같다.

 

 끝이 있다는 것. 그 전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자. 그 공부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면, 과연 흥미를 느끼고 지속해서 공부할 수 있을까?

 수능이 끝날 때까지라던가, 적어도 책 한 권을 떼겠다는 목표, ‘끝’이 필요하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몰입해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끝이 있기에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낸 후에 비로소 끝을 기다릴 수 있다.

 지금 주어진 목숨도 많다고 느끼며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다.

 목숨을 무한정으로 연장시킨다면, 같은 선택을 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에 더하여, 생명이 연장된다고 해서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 연장과 잉여자원의 풍요는 아주 별개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화 ‘인 타임’에서는 생명 연장이 실현된 사회를 그리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허덕이며 살아간다.

 풍요를 누리는 것은 일부 부자들 뿐이다. 무한경쟁사회에 돌입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목표는 번식이다. 자세히 말하면 자신의 일부, 즉 유전자를 남기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생명이 연장된다? 2세를 남기지 않아도 나 자체가 남아있다. 굳이 번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생명체로서의 정체성을 뒤흔들게 된다.

 

 만약 어떤 목적의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번식행위를 한다면, 이 세상은 인간으로 넘쳐날 것이다.

 사람들은 죽지 않는데 계속 태어난다. 심지어 인간보다 상위에 있는 포식자도 없다.

 

 

 자연은 이를 두고만 보지 않는다. 한정된 자원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인간의 개체 수를 줄이려들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결국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사회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세포가 늙지 않으면 뭐하나? 결국 배고파서 아사할 운명을...

 

 

 

 

생명의 연장,

듣기만 해도 과학의 위대함이 느껴지거나 풍요로운 미래사회가 그려진다면,

정말 그 기술이 실현되었을 때의 세상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과연 아름답기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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