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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록/군대라니

야수교에서 배운 심리학

by 흔한 공대생 202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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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의 기억

 때는 20XX년 6월. 구름 낀 하늘에서 비가 내렸고, 버스 한 대가 비를 뚫고 연병장에 도착했다. 버스에 타 있던 빡빡이들은 조교의 고함소리를 듣고는 일사불란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야수교 입소였다.

 훈련병 시절을 끝내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던 훈련병(장)들. 꿀 같다는 후반기교육 혹은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자대. 어딜 가든 훈련소보다는 좋을 거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그들은 곧바로 절망해야했다. 새로운 사람들, 다시 입대로 돌아간 듯한 조교들의 대우. 의류대를 뒤집어까라는 조교들의 말에 머뭇머뭇거리다가 커져가는 조교의 고함을 듣고는 마지못해 그 말에 따르는 그들. 한 달을 조금 넘는 시간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동기들과 작별하고 기대반 걱정반으로 기차에 올라탔던 그 날의 아침은 이미 잊은 채였다.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야수교에서의 첫 날은 그렇게 시작한다.

 

2. 시들어가는 나

 운전병은 야수교에서 소형, 중형, 대형으로 구분되어 교육받는다. 구분의 기준은 사회에서의 경력, 운전기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운전기량은 단순하다. 두돈반을 세워두고 후진과 전진을 해보라고 한다. 말은 쉬워보이지만, 이마저도 못해내는 사람이 많다. 애초에 커다란 군용차가 처음이고, 옆에는 직전까지 소리를 질러댔던 조교가 타있고, 기어마저 사회의 차와 달라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이게 맞는걸까? 라는 생각으로 머뭇대다간 조교의 고함을 또다시 들어야한다. 나는 운전병으로 왔는데 운전대를 처음 잡아본 날부터 기가 죽어버린다. 반분류 후 장내기능시험을 위한 연습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남은 의지까지 탈탈 털려버린다. 차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조교들은 공식 안 외웠냐며 소리지르고 차는 더더욱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시간이 없는데, 연습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대로가다간 시험에 탈락하고 퇴교당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만 가득해진다.

 심지어 주말에 이루어지는 종교활동에서마저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왜 운전병 지원했어요? 이거 진짜 아무나하는거 아닌데. 당신들은 진짜 막중한 책임감이 있어. 당신 한 사람이 잘못했을 때 피해보는게 당신 하나가 아니잖아. 옆에, 뒤에 타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책임지는 자리란 말이죠. 나는 이런거 부담스러워서 못 해. 실력 없으면 미안하잖아. 왜 운전병 지원했어요?” 안 그래도 운전 잘 못하는 것 같아 기가 죽어있는데,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종교활동에서조차 운전병이라는 선택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만들어버렸다.

 

3. 발견

 퇴교를 한참 고민하던 그 때, 나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심리학이라,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이 책은 알아주지 않을까. 아들러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이 되는 건, 내 마음에 달린 일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고, 내가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바라지 말고,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너는 더 발전할 수 있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다음부터 내가 군생활 내내 가지고 있던 한 가지 마음가짐. ‘어쩌라는거지 **’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조교들도 다 같이 끌려온 마당에 얼굴도 처음 본 애들이 운전하는 차에 타 있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긴장을 풀지 말라고 그랬던 것이 아닐까. 법사님 역시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지나고 돌아보니 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때 내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마법의 주문이 바로 ‘어쩌라는거지 **’이다. 그때는 그런 이유같은 거 몰랐다. 그저 조교들에게 기눌리고 내가 쓸모없는 사람같고 주눅들어서 울면서 퇴교를 고민했을 뿐이다. 그랬던 내가 자신감을 찾고 계속할 수 있었던 주문이다.

 

4. 그 후

 저 말이 막 나가겠다는 뜻은 아니다. ‘쓸데없는 이유로 나를 갈구는 사람들에게 기죽지 말자.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배워야할 것을 배우자.’는 의미에서 마음 속으로 되뇌었던 주문이다.

 운전병이라는 이름, 그 위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마땅히 능력이 되는 사람이 차지해야 사고 없이 안전한 군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야수교에서의 압박은 너무나 과했다. 능력을 펼치거나 기르기도 전에 눌려버린다.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에서 멈출 수 있도록 적절히 조절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누군가에게 갈굼받아 마음이 힘든 사람이 있다면, 혹은 조만간 그럴 것 같다면, 항상 명심하라. 모두가 당신을 좋아할 수 없고, 당신이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 인정하라.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배워서 더 나은 사람이 되면 그 뿐이다. 혹시 그 과정에 쓸데없이 걸리적거리는 사람, 말이 있다면 나지막히 되뇌여라. “어쩌라는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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