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 일명 ‘민식이법’이라고 불리는 도로교통법/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지난 2020년 3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시행 전에는 교통사고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며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시행 후에는 너무 과도한 법률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목을 끌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민식이법에 대해 살펴보고 개인적인 입장을 피력한 뒤, 공대생의 관점에서 도로교통법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전해야할지를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해서 이야기해보겠다.
민식이법이 뭐길래?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11일, 충남 아산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계기로 논의되었다. 이후 2019년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19년 12월 1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되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어린이 보호구역에 지방경찰청장, 경찰서장 또는 시장 등에게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횡단보도 신호기 등 어린이 안전을 위한 시설/장비를 우선적으로 설치하도록 의무를 부여함
나. 차량정체 시 신호기 또는 경찰공무원 등의 신호나 지시에 따라 갓길 통행이 허용될 수 있도록 함
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외국인의 경우 외국인 등록을 하거나 외국인 등록이 면제된 사람, 재외동포의 경우 국내거소신고를 한 사람에 대해서만 운전면허 발급이 가능하도록 함
라.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면허를 받지 아니하거나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면허의 효력이 정지된 경우, 국제운전면허증 중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할 수 있는 것으로 기재된 면허증을 발급받지 아니하거나 운전이 금지된 경우 및 유효기간이 지난 경우에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운전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함
보이다시피, 어린이보호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은 (가) 뿐이며, 특별한 내용은 없다.
특가법 개정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원동기전기장치자전거 포함)의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할 의무를 위반하여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를 다치게 한 경우 다음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래서 이게 뭐가 문제냐
언뜻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세히 들여다보면 입장이 달라진다. 과속을 하지 않아도, 어린이가 갑자기 뛰어 나오거나 넘어져서 다친 경우에도, 심지어 어린이가 차의 후면에 접촉한 경우에도, 일단 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되면 운전자는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도로교통법에 있어서, 특히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는 운전자의 잘못을 크게 본다. 실제로 죄의 여부를 따지지 못하고 운전자에게 대부분의 과실이 전가되는 것이 지금까지 일반적인 판결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한 해에 발생하는 보행자 교통사고 5만여 건 중 ‘보행자 과실’이 원인인 경우는 10건, 즉 교통사고에서 운전자 과실이 될 확률이 99.98%라는 이야기다.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8&aid=0004384550)
법의 시발점이 된 사고의 경우에도 제한 속도보다 낮은 23.6km/h의 속력으로 운전하던 중 아이가 정차된 차들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발생한 사고였다. 안타까운 사고인 점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운전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사고는 고의성이 있는 중범죄와 동급으로 여겨진다. 음주운전 사망사고와 어린이 보호구역 어린이 사망사고 모두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사망사고라는 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보행자인 어린이의 과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경우에도 운전자에게 무리한 책임을 지우는 일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일일까. 참고로, 어린이 상해사고의 경우에도 뺑소니 범죄와 형량이 거의 같다.
법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정도로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이 아래부터는 주관성이 다분한 내용이라는 점 참고 바란다.
정말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
운전을 해 본 입장에서 사고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억울함이 먼저 들 것 같다. 솔직히 주정차된 차들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에서는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없다. 차들 틈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는 경우를 정말 자주 봤다. 물론 운전자도 주의해야할 상황이긴 하지만, 부딪힌 경우는 물론이고 놀라서 넘어지거나 사람이 와서 옆면 또는 후면에 부딪히는 경우까지 책임져야한다는 것은, 심지어 중범죄로 처벌받는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적절한 처벌로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좋지만, 도로교통에 관해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가 도로를 횡단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운전자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굉장히 조심해서 주행했고, 어린이 역시 차들 틈에서 나오느라 자동차가 굉장히 근접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가정하자. 이럴 경우, 어떤 한 주체 혹은 두 주체 모두 범죄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률로 인한 피해자만 생기는 경우다.
처벌 대신에 사고 상황을 원천 차단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법률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예를 들면 어린이보호구역 주정차 금지, 신호등이나 펜스 및 육교 설치 의무화 등의 법률 말이다. 주정차된 차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질 위험도 없고, 웬만해서는 차가 지나갈 때 어린이가 도로를 횡단하게 될 일이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고 상황 자체를 줄이는 법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며, 적어도 억울한 피해자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위 의견은 분명히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래 사회로 나가기 위한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자율주행과 관련이 있다. 본격적으로 자율주행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고민해볼만한 한 가지 상황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트롤리 딜레마라고 알려진 시나리오다.
트롤리 딜레마
나는 선로전환기 앞에 서 있고, 눈앞에는 두 갈래로 나뉘는 선로가 있다. 한쪽에는 5명의 사람이, 한쪽에는 1명의 사람이 서있다. 저 멀리서 고장 난 열차가 달려오고 있고, 이대로 있다간 5명의 사람이 열차에 치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을 움직일 수는 없고, 단지 열차의 방향만을 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5명이 치이는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선로전환기를 작동시켜 1명이 치이도록 만들 것인가?
위와 같은 질문은 저대로 끝나지 않는다. 답변을 하면 상황을 바꿔 다시 질문한다. 1명의 사람이 가족이라면? 한쪽에는 아이가, 다른 한 쪽에는 엄마가 서있다면? 선로가 세 갈래여서 열차를 그대로 추락시킬 수 있다면? 질문이 계속될수록 답하기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게 무슨 상관인가?
트롤리 딜레마는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하여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다. 선로 문제를 자율주행자동차의 문제로 쉽게 바꿀 수 있다.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는 상황에서 차 앞에는 5명의 사람이, 왼쪽으로 꺾으면 내 가족이, 오른쪽으로 꺾으면 절벽이 나온다. 제동거리 때문에 브레이크는 소용이 없다(물론 핸들조작과 동시에 브레이크는 당연히 밟아야겠지만). 각 상황에 따라 5명의 일반인, 내 가족, 나 자신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내가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떤 결정을 하겠는가? 만약 자동차가 자율주행자동차였다면, 이러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어야할까? 모르는 척 직진? 아니면 사람이 적은 왼쪽? 그것도 아니면 운전자를 다치게 하는 오른쪽?
물론 위 상황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저런 상황이 앞에 펼쳐져있다면, 그전에 상황을 감지해서 속도를 줄이고 서행할 것이다. 이건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우리가 원래 다루고 있었던 좁은 골목길을 생각해보자. 갓길에 차들이 주차되어있고, 시야확보는 물론 센서까지 작동하기 어렵다.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자동차는 그대로 가야할까? 아니면 무리하게라도 핸들을 틀어야할까? 만약 사고가 났다면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 현행법대로 운전자? 아니면 자동차 제조업체? 센서 제조업체?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사고가 났다는 사실도 큰일이지만, 그 이후로 정말 난해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바로 상용화하지는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가 왔다. 내 의견은 위에서 밝혔다시피, 사고 상황을 원천 차단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이다. 갓길 주차는 둘째 치고, 무단횡단을 할 수 없게 펜스를 친 후 육교를 놓는 것이다. 보행자 입장에서는 다칠 위험이 줄어들고, 운전자 입장에서는 처벌받을 위험이 줄어들고,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는 고민거리가 줄어든다. 초기 투입 자본은 많이 필요하겠지만, 사고를 줄인다는 법률의 근본 취지와도 맞고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겨 더 많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논지에서는 벗어나지만, 도로에서 보행자를 고려하지 않게 된다면 교통 정체도 줄일 수 있다. 현재 사용되는 신호교차로 대신 입체교차로나 회전교차로를 구성하면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유지관리 비용이 적으며 인접 도로 및 지역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사고 빈도가 낮으며 지체시간이 감소되어 연료소모와 배기가스를 줄이는 등의 장점이 있다(출처: http://www.roundabout.or.kr/file/content.php?cs_ancestor=2&cs_mkey=14). 특히 자율주행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라면 효과는 극대화될 수 있다.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사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마치며
민식이법에 관한 논쟁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슈가 되고 논란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본인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상대측을 마냥 비난만 하며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감정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나는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인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하여 의견을 제시해보았다. 내 의견 역시 정답이라는 보장이 없고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오히려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놓친 부분이 많아 오답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의견을 나누고 몰랐던 부분은 알아가며 생각을 모은다면 정답에 점점 가까워지는 해결책이 등장하지 않을까.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며 싸우는 대신 미래를 바라보고 발전적인 토론을 해야 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시작한 글을 교훈적으로 끝내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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