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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록/혼행기

[혼행기] 200209 한양동부역사기행

by 흔한 공대생 2021.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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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서울에서의 삶이 일주일 남은 시점, 나는 홀로 나들이를 떠났다.

익선동 종로스테이크 > 창덕궁 > 창경궁 > 대학로 > 육수당-오설록 > 낙산공원-동대문 > 청계천


 

여정의 시작

  입대 전, 나는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며 살았다. 밥도 먹지 않고 유튜브와 페이스북 영상만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문득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뭘 할지 고민하다가 6시간가량을 들여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혼자 떠나는 서울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12:30: 익선동 종로스테이크

  12시 쯤 일어났다. 사실 11시 즈음부터 뒤척이다 일어났다.. 사람이 마음을 먹어도 한 번에 바뀌는 법은 없는가보다. 왕십리역에서 5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으로 갔다. 5호선은 처음이었는데, 나만 안 탔었나보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역에서 나와 익선동 골목에서 ‘종로스테이크’를 찾았다. 어제 열심히 찾은 맛집이다. 가게는 꽤 안쪽에 숨어있었다. 혼자 온 손님은 나뿐이라 조금 눈치 보이긴 했지만 아무렴 어때. 대표 메뉴 종로스테이크를 시켰다. 현금으로 7500원이다. 와인이 땡겼지만 혼자인데다가 앞으로의 일정이 남아있기에 포기했다. 스테이크에 대해 평하자면, 양은 조금 적었지만 굉장히 부드럽고 맛있었다. 가격 대비 괜찮은 맛집이었다.

 

13:30: 창덕궁

  익선동을 통과해 창덕궁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북촌 한옥마을에 가는 것이었지만, 왜인지 귀찮아져서 갈 수 없었다. 점심도 일찍 먹고 북촌 일정은 취소되어버린 바람에 13시 반이라는, 예정보다 1시간 반이나 빠른 시각에 창덕궁에 입장했다.

  어렸을 적 창덕궁에 왔던 기억은 있지만 보이는 풍경은 익숙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사람은 적었고, 외국인의 비율이 높았다. 궁궐은 언제 봐도 좋은 것 같다. 눈앞에는 조선에서 가장 멋있게 지은 한옥과 나무들이, 저 멀리에는 현대식 빌딩들이 어우러지며 오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파란 하늘에 붉은 기둥, 검은 지붕과 초록 문, 알록달록한 단청의 색감이 참 좋다. 사람들이 없어서 그 아름다움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더 없는 곳을 찾아 구석진 곳으로 가서 홀로 사진을 찍고 놀았다.

 

14:10: 창경궁

  창덕궁과 후원, 창경궁을 잇는 함양문에 도달했다. 솔직히 후원이 가보고 싶긴 했지만, 겨울인데다 시간이 애매해질 것 같아 그냥 창경궁으로 향했다. 창경궁은 기억에도 없다. 하지만 처음 본 풍경은 너무나도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

  탁 트인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데, 그 공간을 오래된 한옥들이 가득 메우고 있고 주변의 나무들이 어우러졌다. 그렇게 평화로운 모습은 지구상에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았다.

  먼저 뒤쪽을 가보기로 했다. 성종태실비를 지나 연못을 돌아 온실로 갔다. 굉장히 근대적인 건물이었다. 작은 온실이었고, 그렇게 따뜻하지 않으면서도 겨울에 꽃과 열매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분재된 소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되게 예뻤다.

 

  다시 궁궐 쪽으로 향했다. 다른 궁과 다르게 기둥들이 낡아 있음이 너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이 더 좋았다. 새 것보다는 옛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요즘이다. 외국인 가족이 사진을 찍는 스팟이 있었다. 사진 찍으면 예쁠 것 같았지만 사람이 있으니 나중에 오기로 했다. 정전을 둘러보고 온 후 그 장소로 가보았지만 사진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역시 눈과 카메라는 다르고 그때그때 장소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다. 모네의 시리즈 그림 ‘루앙 대성당’처럼. 자그마한 관천대를 마지막으로 창경궁을 나왔다.

  넓은 공간과 많은 수목, 낡은 건물이 있어서 좋은 창경궁이었다. 쉬고 싶을 때 다시 오면 좋겠다.

 

15:00: 대학로(CGV)

  나는 창경궁 정문 앞에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께 보지 못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서둘러 예매를 하고 대학로 cgv를 향해 달렸다. 10분 만에 도착했다. 역사기행이라는 주제에 안 어울렸지만, 그래도 나를 위한 시간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가 끝나니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대학로를 지나 어제 알아본 국밥집에 갈 생각이었다. 책을 홍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생 같아 보였는데 무슨 이유에서 홍보하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당신의 날씨..? 비슷한 제목이었고, 기분을 날씨로 표현해보라는 질문이었다. 귀찮아서 바쁘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원하는 것을 다 말해버린 기분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경험이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다음부터는 적극 참여해볼 생각이다.

 

17:30: 육수당-오설록

  국밥집 육수당에 도착했다. 대표메뉴라는 서울식 국밥을 주문했다. 9000원이라는 조금 비싼 가격이었지만, 대표라니까.. 메뉴를 기다리면서 구경을 했다. 모토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국밥을 널리 알린다. 벽에 걸린 지도에는 각 지역의 특색 있는 국밥을 표시해두었다. 몇 지역 없는 것이 아쉬웠다. 나도 여행을 다니며 먹은 국밥들을 지도에 표시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밥은 맛있었다. 특 사이즈인 것 같았다. 순대도 많았다. 선지를 채웠는지, 순대가 크고 식감이 좋았다. 돈이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다만 순대에 비해 국물과 수육이 특별히 맛있지는 않다는 점은 아쉽다.

 

  길을 건너 오설록에 갔다. 사실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서울 여행하면 떠오르는 후식 정도는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녹차 아이스크림을 주문했고, 양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위에 뿌려진 녹차가루는 쓴맛이 강했지만 그만큼 녹차 맛을 살린 아이스크림은 없지 않을까.

 

18:30: 낙산공원-동대문

  낙산공원에 도착했다. 사실 이곳이 원래 나의 목적지였다. 스케일을 키워 낮의 활동들을 해본 것이고.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갔다. 그리고 그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하얀 성벽과 검은 하늘, 노란 달이 어우러졌다. 마침 보름날인 것을 깨닫고 야경을 보러 간 것이 참 좋은 생각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건졌지만, 예쁜 사진은 잘 나오지 않았다. 성벽이 부각되어 멋이 살지 않는 것이 첫째 이유고, 야경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다는 것이 둘째 이유다. 야경을 위해 방문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뉴욕이나 오사카 같은 불빛 가득한 야경을 기대했지만, 네온사인 간판과 병원, 교회만 눈에 밟히는 서울이었다.

  성곽을 따라 동대문으로 향했다. 이 길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저 성벽이 보이는 일반 포장도로에 심지어 사람도 없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동대문은 아름다웠다. 도심 한 가운데 낡은 나무로 이루어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동대문은 그 자태가 고급져보였다.

 

19:30: 청계천

  마지막 코스 동대문을 뒤로하고, 나는 청계천으로 내려갔다. 한 시간 정도를 청계천을 따라 계속 걸었다. 이 길도 사람 없이 어두웠지만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유난히 달이 예쁜 밤이었다. 용답역 부근까지 걸어갔다가 왕십리역으로 복귀했다.

 

여정을 마치며

오늘의 경로

  만족스러우면서 아쉬움도 남는 서울 나들이였다. 여유를 즐기기엔 너무 계획적이었고, 계획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름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야경도 생각만큼 예쁘진 않았다. 하지만 창경궁이라는 새로운 장소를 알고, 고궁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껴봤고, 처음으로 성곽과 동대문을 보고, 서울 도보 여행이 충분히 가능함을 알았다는 점이 이 여행을 만족스럽게 만들어준다. 많이 걸었고 그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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