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기록/군대라니

훈련소 썰 -행군-

by 흔한 공대생 2020. 12. 23.
728x90
반응형


 행군은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훈련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가장 힘든 날이기도 했다. 길고 긴 훈련 끝, 전날 밤에 텐트에서 야외 숙영 후 주간에 각개전투를 마무리하고 철야행군까지 연속해서 진행했다. 밤에 잠도 잘 못자고 낮에 그렇게 기운을 쓴 다음 밤새 행군을 한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면서도 모두가 다 해내는 일이었다. (나중에 듣고보니 우리 기수만 그렇게 진행한 것 같기도 하다...ㅠ)

 

 입대를 앞두고 있다면 행군이 걱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집도 많이 나고, 무거운 군장 매고 한참을 걸어야하는 일이 절대 쉽지는 않다. 그래도 막상 닥치면 모두 해 내긴 하던데, 그래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내 경험담을 적어보기로 한다.

 


 

 무더운 여름날, 각개전투 훈련이 끝나고 잠깐의 정비시간이 주어졌다. 철야행군이 남아있다는 건 알고는 있지만, 언제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전날 숙영을 했기 때문에 이미 완전군장인 상태였고, ‘짐을 빼서 무게를 좀 줄여볼까'했던 생각은 전혀 실행할 수 없었다. 출발 직전 에너지바 두 개와 빈츠 한 상자를 받았고, 그 상태로 철야행군이 시작되었다. 대충 23시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훈련에) 쳐 맞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잘 해내리라 다짐하며 체력을 아끼고 발을 끌지 않으려 똑바로 걷고, 시계는 쳐다보지도 않고 맨 앞 선두의 불빛만을 바라보며 걸었다. 칠흑같은 밤, 훈련병들이 다 똑같은 복장으로 줄지어 걸었고 중간중간 조교들의 경광봉 불빛만이 빛났다. 한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할만은 하다고 생각했다. 발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몸에 별다른 무리는 없었다. 그저 빨리 끝내고 땀에 절은 옷을 벗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평소라면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졸리다거나 배고프다는 생각은 없었다. 물을 조금 마셨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출발했다.

 

 출발을 하려 군장을 매는 그 순간, 세상에나, 갑자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이 미친듯이 아파서 발의 모서리 부분으로 걸어야했고, 덕분에 종아리 힘을 많이 써서 근육이 언제 뭉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있나, 앞사람의 속도에 맞춰 걷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늦춰지는 것이고, 그런 상황은 절대 만들 수 없었다. 이때부터는 시계를 자주 확인했다. 이전에 대충 한 시간을 걷고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부터 한 시간만 있으면 다시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탄헬멧을 쓴 머리는 너무나 무거워 자꾸 아래로 쳐졌고, 앞사람 발 뒤꿈치를 간신히 보며 걸었다. 속도가 변할 때면 앞사람 군장에 계속 머리를 박아서 너무 미안했다..

 

 비가 살짝 뿌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긴 오는데 정말 애매하게 와서 우의를 꺼내라고 하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참말이구나. 내 전투복은 땀인지 비인지 모를 물에 젖어 마치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만 같았다. 그래도 오랜 행군으로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때쯤 두 번째 휴식을 취했다. 이때는 이온음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껴먹어야한다는 생각이 머리 가득 차있었지만, 몸은 그걸 거부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플라스틱 통을 털어 마지막 방울까지 핥아먹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그 단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쉬는 동안 몸이 식었고 물에 젖은 전투복이 내 체열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이러다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추위에 떨어야했다. 발바닥은 계속 아팠고, 내 어깨는 20kg에 달하는 군장의 무게를 버거워했다. 심지어 군장 어깨끈의 위치가 군복에 견장을 다는 단추와 겹치는 바람에, 내 어깨는 20kg의 무게를 단추 두 개에 해당하는 면적으로만 받아내야 했다. 단추가 있는 부분이 너무나 아팠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걷는 일뿐이었다.

 

 어디를 걷고 있는 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가며 우리 막사가 얼마나 멀리 있는 지 계속해서 계산해보려 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어둠 속을 걸을 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가 보였다. 논산의 자랑, 연무대군인교회의 거대 십자가였다. 난 바로 생각했다. ‘교회 주차장이 좀 크지 않았나..? 하나님, 저기서 쉬어가게 해주신다면 하나님을 믿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우리는 교회 주차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운 좋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대충 1L 들이 수통이 거의 비워져가고 있었고, 얼마나 더 걸어야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일어나 군장을 매고 교회를 떠났다. 솔직히 이때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앞사람을 따라 걷기만 했다. 마지막 행군은 휴식시간 없이 1시간 반은 걸은 느낌이다. 1시간과 1시간 30분의 그 30분 차이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결국 우리 막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대열 그대로 연병장에 들어가 전사 임용식을 받음으로써 육군훈련소에서의 모든 훈련이 끝이 났다.

 

 간단히 짐만 풀었는데 아침식사 시간이 되어버렸다. 땀과 비에 젖은 채로 취사장에 모여 앉아 먹었던 그 사천 짜파게티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더럽게 맛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물이 따뜻하지 않아 면이 안 익었다.. 어쨌든 대충 배를 채우고 따뜻한 물로 몸을 깨끗이 씻어낸 다음 생활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일어나서 보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발에는 특히 뒤꿈치와 엄지발가락 부근에 물집이 잡혀 있었고, 종아리는 너무 뭉쳐서 뜀걸음을 못 할 정도였다. 덕분에 행군 다음날 실시한 체력측정에 응시하지 못했고, 나는 지옥의 보충 체력훈련을 받아야했다.. 물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바늘로 살짝 찔러 무난하게 물을 빼낼 수 있는 정도였다. 다른 동기들도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물집방지패드의 효과인지 사람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중에 알고보니 훈련소/신교대에 따라 행군 훈련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동기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쉬는 시간마다 음료수를 받아 배부를 정도로 마시고도 남았단다. 따라서 위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경험담으로 참고만 하길 바란다.

 


꿀팁

  1. 수통의 물은 항상 채워두자. 언제 출발해서 물이 부족해질 지 모른다.. (생수병 하나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2. 군장을 잘 싸자. 안 넣어도 되는 물품을 괜히 넣어서 무게를 늘리지 마라.

  3. 군장 끈 잘 조여라. 흔들리면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장난 아니게 아프다.

  4. 우의는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언제 꺼내라고 할 지 모른다. 깊숙히 넣어두면 고달프다..

  5. 전투화는 받은 순간부터 끊임없이 구겨라. 가죽이기 때문에 계속 주물러야 길들여지고 그래야 행군 때 물집이 덜 생긴다.
728x90
반응형

댓글